섬기는 이들
통일위원회 섬기는이들, 2009년 10월 22일 선출
십자가의 길을 좇아온 통일위원회 역사
1989년 4월 전국연합회(당시 회장 조은철 목사)는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을 모으기 위해 남북 교회대표가 참여한 '한민족 평화통일선교대회'를 열었다.
'아나데마'의 기도와 김재열 선교사의 석방
지난 10년 동안 북한의 나진. 선봉지역에서 인도주의적 의료 봉사 활동을 해온 60대 한국계 캐나다인 김재열 선교사의 억류 소식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학사 에스라와 평양신학원
한국 전쟁 이후 북한에서 사라졌던 신학원이 1972년 '평양신학원'으로 재개된 획기적 사건을 학사 에스라의 말씀 회복 운동으로 비교할 수 없을까?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위원장이었던 강량욱 목사는 평양신학원 설립의 숨은 공로자였다.
고난과 사랑의 물때
함석헌 선생은 1930년대에 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후에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개칭됨)에서 조선의 역사는 고난의 반복이며 고난이야말로 조선이 쓰는 가시면류관이라고 하였다. 밀물과 썰물처럼 고난이 주기적으로 순환되어 나타나는 것이 한국 역사라고 한다.
'조선에서의 대학살'과 '손님'
한국전쟁은 한반도 전반에 걸친 우리 민족의 정신적 암흑기였다. 죄 없는 수많은 민간인들이 좌우익의 대립으로 무참히 죽어갔다.
그들도 기독교인이었다
역사가 가진 자들의 손에 의해서 쓰여질 때 오점의 과거사를 남긴다. 세계 각국의 역사 기록은 제왕들의 위업과 업적의 향연이었다. 인간이 제왕과 위인들의 위대함만을 부각시킬 때 그 역사는 진실을 덮어버린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이 14살 때 지은 시에 홍난파 선생이 1926년 곡을 붙여 만든 노래가 '고향의 봄'이다. 일본의 압제로부터 해방될 꽃피는 삼천리 금수강산을 한 폭의 수채화로 담아낸 동요,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로 민족의 산과 들녘에 봄의 기운이 붉게 솟아난다.
복음의 DNA는 북에도 있다
예수의 피로 얼룩진 십자가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부활한 것이 복음이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해 직행할 때 빛의 열매를 맺는다. 그러므로 복음이 환난과 인내와 연단과 소망을 낳게 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가 되었다.
똥돌바우야, 어머니 기도를 기억하니?
"똥돌바우야, 어머니가 너를 위해 기도하시던 걸 기억하니? 눈감으시기 전에 너한테 반드시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잖니?" 42년만에 러시아에서 극적으로 만난 누나는 똥돌바우가 미국이나 서울로 탈출해서 반드시 어머니의 유언대로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첫 사랑 - First Love, 초심
First Love, 우리말로 하면 첫사랑. 믿음의 조상들이 물려준 신앙과 첫 사랑이 북한 사람들에게 남아있고, 그 첫사랑이 언젠가는 피어날 것을 믿는다. 그 첫사랑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김일성은 노후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을 두 번씩이나 초청하였다고 믿는다.
고난의 길 함께 걸어온 오병이어 선교
통일위원회 방문단은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이하 조그련, 위원장 강영섭 목사) 실무자와 만나 오병이어 선교지원에 대한 현지방문과 기증한 트럭 전달, 빵 공장, 그리고 육아원을 방문했다. 기증된 트럭은 남포항에 하역이 된 것까지 직접 확인했다.
십자가의 길을 좇아온 통일위원회 역사
전국연합회 통일위원회의 역사는 먼저 무엇보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이며, 연합감리교의 자랑이다.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에서 통일로
남과 북 두 정상의 역사적인 첫 회동이 2000년 6월 13-16일 평양에서 열렸다. 그리고 6월 15일 두 정상은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정의, 사랑, 평화의 씨앗을 심는 사람들
미국인회중교회에서 12년간 목회하면서 느낀 점 중의 하나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교육받은 교인들 대부분은 미국을 당연히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화해사역으로 온 땅의 구원
화해사역은 60여 년의 민족의 분단을 경험하며, 그리고 통일 후의 시대를 준비하면서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역으로 시작되었다.
“방문기 빨리 끝내. 10회까지만 쓰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얘기를 시작할까 한다. 황해도 연백의 바닷가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시 북에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세 여동생을 두고 아버지와 누님과 함께 남쪽으로 왔다.
'예수의 십자가, 우리의 십자가'
분단으로 인한 갈등과 우리의 과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념 갈등과 화해의 삶을 위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조명해 보고, 넓게는 통일된 조국을 가져오기 위해서 좁게는 갈등 해소를 위한 우리의 과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많이 변한 북한, 새로운 길이 보인다
한인연합감리교회는 산하에 통일위원회를 조직해 꽤 오래 전부터 북한의 국수공장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 지원은 2년 전부터 봉수빵공장에 밀가루 지원으로 바뀌었다.
화해와 평화의 나들목
북한이 자연재해로 인해 극심한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1998년 시작한 오병이어 선교는, 지금까지 두 곳의 국수공장(평화국수공장, 사리원 밥공장)에 각각 매달 30톤의 재료(밀가루, 소금 등)를 보내어 국수를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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