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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의 가장 어두운 슬럼가에 빛을 밝히고 있는 연합감리교인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빈민가인 시티솔레이 거리를 그곳 아이의 손을 잡고 걷고 있는 김승돈 선교사. A UMNS photo by Mike DuBose.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빈민가인 시티솔레이 거리를 그곳 아이의 손을 잡고 걷고 있는 김승돈 선교사. A UMNS photo by Mike DuBose.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또한 가장 가난한 지역은 시티솔레이라는 판자촌 마을이다.

이곳은 돼지들에게는 파라다이스라고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쓰레기더미와 진흙탕 속에는 바로 아이들이 있다.

김승돈 선교사는 이곳 아이들에게 희망의 등대와 같은 존재이다. 한인연합감리교회 평신도인 그는 두려움이나 주저함 없이 아이들과 함께 걸으며 그들의 작은 손을 잡는다.

2월 겨울의 무더운 한 날 김 선교사는 인사를 나누며 판자촌의 진흙탕 사잇길을 걷고 있다. “김! 김!”이라고 아이들이 노래를 하듯 그를 부른다. 그가 걸어갈수록 더 많은 아이들이 그에게 모여든다. 한 어린아이가 버려진 콘돔을 풍선처럼 가지고 놀고 있다. 누더기가 된 붉은 티셔츠를 입은 한 작은 소년이 그에게 달려와 그의 손을 꼭 잡고는 이 암울한 판자촌을 다니는 동안 놓지 않는다.

김선교사는 2002년부터 아이티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지만, 포트 로더데일에 있는 남부플로리다한인연합감리교회의 공식 선교사가 된 것은 3년 전 지진이 일어난 이후이다. 그는 아이티에서 살고 있고, 그의 아내와 두 아이들은 포트로더데일에 살고 있다.

남부플로리다한인연합감리교회의 담임목사인 장찬영 목사는 미국 내 다른 한인연합감리교회들도 김승돈 선교사의 사역에 기금을 지원하거나 선교팀들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 중인 선교센터의 옥상에서 시티솔레이를 둘러보며 설명하는 김승돈 선교사. A UMNS photo by Mike DuBose.
건설 중인 선교센터의 옥상에서 시티솔레이를 둘러보며 설명하는 김승돈 선교사. A UMNS photo by Mike DuBose.

아이러니하게도 2010년 1월 12일 아이티 지진이 일어난 그 날 김 선교사는 자신이 꿈꿔왔던 사랑과 희망(Love and Hope)의 선교센터 건축을 시작했다. 3년이 지난 지금 깨끗한 콘크리트 건물이 시티솔레이의 악취와 불결한 환경 속에 세워지고 있고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

김 선교사는 목사가 아니지만, 이 빈민가에 살고 있는 100명 이상의 목사들에게 이 선교센터의 예배당을 개방하고 있다. 매 주일 2번의 예배를 드리는데 첫 번째 예배는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그리고 젊은이들이 더 많이 오는 두 번째 예배는 9시부터 11시까지 드리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450개 교회와 300명의 목사들이 이 판자촌에 살고 있는 삼십만 명의 주민들을 섬기고 있다고 한다.

이들 목사들의 90%는 정식 교육 과정을 받지 않은 이들로, 선교센터의 계획에 신학교를 포함시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김 선교사는 말한다.

미소를 지으며 그는 “하루는 교회에 앉아 있던 이들이, 다음 달에는 목회자가 되어 있지요.”라고 설명한다.

이미 450명의 기본 및 보조 학생들이 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 아직 고등학교, 대학교, 신학교, 기숙사는 준비가 진행 중에 있다. 3층 건물 옥상에서 김 선교사는 밑에 보이는 분주한 고속도로를 가리키며, “아이티 사람들조차도 이곳을 지나가기를 두려워하지요.”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의 행복

시티솔레이는 “갱단”이 대부분 지배하고 있는 위험한 곳이라고 그는 말한다. 선교선터 부지를 치우면서 김 선교사는 3-4구의 사체를 발견했었다고 말한다.

“그런 곳에 교회를 세우리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죠. 총으로 위협받은 적도 있지만, 여전히 이곳에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행복합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최근에 갱들의 총격으로 40명이 사망했던 날을 회상한다. “어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갱들에 의해 죽었습니다.”

김 선교사는 7개의 고아원들을 지원하고 있는데 15개까지 늘릴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고아들이 그렇게 많은 이유 중 하나는 결혼에 대한 의미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9, 22, 26세 된 젊은이들이 아내도 없는데 이미 아이들이 있지요.”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교회에서 결혼에 관한 세미나와 결혼식을 후원하는 일을 시작했다.

“저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얼마나 가정을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고 있지요.”

왔다가 떠나는 도움

김 선교사는 이 지역에 다른 신앙 단체들과 NGO가 거쳐간 것을 보았다. 아이티에는 50명 이상의 한인 선교사들이 있다. “그들은 이곳이 너무 위험해 오고 싶어하지 않아요.”

가톨릭 교회에서 지은 보건소나 장로교 교회에서 세운 교회와 학교 같은 몇몇 건물들은 이 지역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다른 어떤 건물들은 아주 비효율적인 장식용이다. 그는 그 예로 일부 NGO에서 지어놓은 콘크리트 화장실을 지적한다. “5천 달러나 든 이 화장실은 겨우 1주일 버텼죠. 쓸모 없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사람들은 웅크리고 앉아 그냥 땅에다 용변을 보고 있다.


지역 주민들을 도와 세운 콘크리트 다리. A UMNS photo by Mike DuBose.
지역 주민들을 도와 세운 콘크리트 다리. A UMNS photo by Mike DuBose.

김 선교사는 이 지역의 현지 목회자들의 도움으로 주민들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저는 목회자들과 함께 뭔가 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는 손이 있고, 도구가 있으니,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지난 달 김 선교사는 주민들을 도와 이 지역을 지나고 있는 오염된 개방하천 위로 콘크리트 다리를 세웠다. “전에는 나무로 된 좁은 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하천으로 떨어졌지요.”

시티솔레이는 개방하천으로 경계가 나뉘어 있고 국제공항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끈적끈적한 회색 물들이 시티솔레이의 모든 주택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쓰레기들과 함께 버려져 있다.

뜨거운 날씨와 악취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다.

늦은 오후의 태양 아래, 아이들이 물가에서 놀기 위해 모여든다.

(동화에 나오는)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김 선교사는 그를 가까이 에워싸고 있는 한 무리의 어린 소년들의 마음을 빼앗는다. 그는 아이들을 구슬려 아이티 크리올(아이티 프랑스 말)로 노래를 부르게 하고,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꼭 껴안아 준다. 한 아이가 스포츠 셔츠를 흉내내기 위해 등에 파란색 잉크를 사용해 손으로 그린 작은 숫자가 그려진 오렌지색 셔츠를 입고 있다. 멀리에서는 속옷을 입은 아이들이 빤질거리는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있고, 어부들은 잡힌 것들을 살펴보고 있으며 돼지들은 마치 하마처럼 얕은 물에서 뒹굴고 있다.

하지만 김 선교사의 얼굴에는 조용한 미소가 떠오른다.

“제 아내와 저는 3-4명의 고아들을 입양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를 했지요. 하지만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300-400명이 더 있으니까요.”라고 그는 말한다.

(Kathy Gilbert는 연합감리교회공보부의 멀티미디어 기자로 지난 2월 11일부터 18일까지 아이티를 방문하였다. 이 기사는 2월 15일에 김승돈 선교사가 있는 시티솔레이를 방문한 내용이다. 이기사는 또한 UMC.ORG에 곧 기재될 예정이다.)

글쓴이: Kathy Gilbert,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옮긴이: 김영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ykim@umcom.org
수정: 2013년 3월 18일

Resources

Haiti 2013: Bringing light to darkest slum (영어기사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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