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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사역 - 비폭력 대화에서부터

 

기상학자가 발표한 과학 이론 가운데 ‘나비 효과’라는 것이 있다. 초기 기상 현상의 미세한 차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커져서 기후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다는 이론이다. 곧, 나비의 단순한 날갯짓이 날씨마저 변화시킨다는 이론이다. 이것을 사랑으로 바꾸어 말하면 사람들의 작은 사랑의 날갯짓이 세상을 바꾸는 태풍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나비 효과’가 폭력에도 적용된다면 어떤 현상이 생길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무심코 행한 아주 작은 폭력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커져서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폭력으로 가득한 세상이 되어버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아무 생각 없이 폭력을 행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폭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폭력 그 자체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개 보통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 곧 싸우고, 죽이고, 때리고, 전쟁하는 것만을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리적인 폭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인 폭력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전혀 폭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말할 때 종종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마음을 아프게 한다.

몽골 속담에 “칼에 베인 상처는 아물어도 말에 베인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정신적인 폭력이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해롭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정신적인 폭력은 피해자들의 내면에 분노를 일으켜서, 결국은 그들 개인에게나 주위에 폭력으로 대응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정신적인 폭력이 물리적인 폭력에 불을 지피는 연료인 셈이다.

그러므로 물리적인 폭력의 불을 끄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연료가 공급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연료가 공급되지 않는 용광로의 불은 자연히 꺼지게 되기 때문이다. 나 자신부터 정신적인 폭력을 가하는 가해자의 역할을 멈추어야 한다. 우리가 매일 쓰는 언어와 대화 방법을 바꾸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이 실천되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안에서 이 방법이 훈련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는 마셜 로젠버그(Marshall B. Rosenberg)에 의해 고안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비폭력은 마하트마 간디가 사용한 것과 같은 뜻이다. 즉, 우리 마음 안에서 폭력이 잦아들고 자연스러운 본성인 연민으로 돌아간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로젠버그는 인간이 자신의 본성인 연민으로부터 멀어져, 서로 폭력적이고 공격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이유를 관찰한다. 이와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 가운데서도 어떻게 연민하는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관찰한다. 그 결과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연민이 우러나는 유대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대화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간략하게 정의한다면 비폭력 대화는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 주고받는 것을 기뻐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믿음 위에 세워져 있다. 그래서 비폭력 대화는 우리의 본성인 연민이 우러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고, 더불어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대화방법(말하기와 듣기)이다. 또한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유지한 채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대화방법이다.

무엇보다 비폭력 대화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말을 온전히 듣고 또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도록 이끌어 준다. 즉 상대방의 말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대신에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정중하고도 솔직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관찰하고 느끼고 원하는가를 의식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정직하고 명확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비폭력 대화를 하게 되면 우리는 남에게 비판이나 평가를 들었을 때 습관적으로 보이는 반응을 벗어버릴 수 있다. 즉 변명하며 물러나거나 반격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객관적인 눈으로 자신의 의도와 인간관계를 여러 측면에서 비추어 보게 되어, 저항하거나 방어하는 태도, 또는 공격하거나 폭력적으로 반응하는 경우를 많이 줄일 수 있다. 이런 태도는 자기 자신의 내적인 대화도 경청함으로써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기르게 되어 자연히 진심으로 소통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우리가 비폭력 대화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네 가지 요소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첫 번째 요소는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observation)이다. 즉 판단과 관찰을 분리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그것이 나에게 유익하든 그렇지 않든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다. 그의 행동에 대해 내가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의 여부를 떠나, 판단하지 않으면서 관찰한 바를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관찰에 판단을 섞으면 듣는 사람은 이것을 비판으로 받아들이고 우리가 하는 말에 쉽게 저항감을 갖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는 시간개념이 없다.”가 아니라 “그는 지난 세 번의 약속에서 모두 30분이 지난 후에 왔다.”라고 하면 관찰에 따른 표현이 된다.

두 번째 요소는 느낌(feeling)을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느낌(아픔, 무서움, 기쁨, 즐거움, 짜증 등)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어휘를 늘리면 우리는 좀 더 쉽게 서로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느낌을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솔직한 내면을 인정하는 것이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비폭력 대화에서는 실제로 우리의 느낌을 표현하는 말과 우리의 생각, 평가, 해석을 나타내는 말을 구별한다. 보통 우리는 ‘느낀다’는 말을 많이 쓰지만, 실제로는 느낌보다는 생각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나는 오해를 받고 있는 느낌이다.”고 했을 때 그것은 느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한 나의 생각을 드러내는 말이다.

세 번째 요소는 우리의 느낌 뒤에 있는 필요/욕구(need)를 의식함으로써 자신의 느낌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비폭력 대화는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우리의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이 될 수는 있지만 원인은 아니라는 인식을 새롭게 해준다. 즉 우리가 갖게 되는 느낌은 당시 나의 필요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언행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 자세에 달린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폭력 대화는 다른 사람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욕구와 희망, 기대, 가치관이나 생각을 인정함으로써 자신의 느낌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한다. 여기에는 “나는 ~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을 느낀다.”는 표현방법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네가 음식을 남기면 엄마는 실망한단다.”고 표현하면 엄마의 실망스런 느낌에 대한 책임이 아이에게 있지만 “엄마는 네가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기 때문에 네가 음식을 남기면 실망한단다.”로 표현하게 되면 엄마는 자신의 느낌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네 번째 요소는 우리가 각자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서로에게 부탁(request)하기 이다. 이것은 막연하고 추상적이거나 모호한 말을 피하고, 원하지 않는 것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말함으로써 긍정적인 행동을 부탁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우리가 전하려는 뜻이 항상 그대로 전달되지는 않기 때문에 그것이 정확하게 전해졌는지 확인할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만약 상대방이 우리의 부탁에 응하지 않을 때 비난이나 처벌을 받게 되리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부탁이 강요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상대가 기꺼이 할 수 있을 때에만 우리의 부탁을 들어달라는 뜻을 분명히 함으로써, 이것이 강요가 아니라 부탁임을 상대가 믿도록 도와야 한다. 비폭력 대화의 목적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다. 솔직함과 공감에 바탕을 둔 인간관계를 형성하여 결국에는 모든 사람의 욕구가 충족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비폭력간디협회를 설립한 아룬 간디(Arun Gandhi)는 로젠버그의 책 “비폭력 대화”의 머리말에서 비폭력 대화를 배워서 생활에 활용하기를 적극 추천한다.

“비폭력은 우리 안에 잠재해 있는 긍정적인 면이 밖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우리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이기심, 탐욕, 미움, 편견, 의심, 공격성 대신에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존중, 이해, 감사, 연민, 배려가 우리 마음을 채우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이 세상은 무자비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도 냉혹해져야만 한다.’ 나는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세상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것이다. 오늘날 이 세상이 무자비하다면, 그것은 우리의 무자비한 태도와 행동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변하면 우리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우리 자신을 바꾸는 것은 우리가 매일 쓰는 언어와 대화 방식을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평화를 위해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우선 우리가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처럼 살면서 평화를 위해서 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평화롭게 사는 것이 평화를 가져온다고 믿는다.

글쓴이: 조항백 목사, 맨스휠드한인연합감리교회, 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