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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원칙대로 살면 기적이 있다

 

"크리스천의 공동과제인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는 일'은 어려운 이웃의 손을 잡아주는데서 비롯되는 공동체 참여 정신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내가 섬기는 교회가 땅에 떨어져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열매 맺기를 소망하고, 이웃들에게 쉼터가 되는 플래그쉽 교회(flagship church)가 되기를 소원 한다."

가난하고 힘없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잡아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꾸었던 소년은 목회자가 되었고, 지금 그는 그 꿈을 실현해 가는 중심에 서 있다. "예수님을 닮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예수님을 따라가는 그런 목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기도하고 있지요."

뉴욕 후러싱제일교회 김중언 목사는 "넉넉지 않은 살림에서도 사리사욕에 유달리 엄격하셨던 어머니의 삶을 통해 부지런하고 신실한 사람으로서의 목회의 길을 걷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지금도 하나님 앞에 설 때는 목사가 아닌 한 인생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 서게 된다"는 그는 "훈련 받은 목자요, 설교자요, 제사장이자, 치리자로 맡은 바 직분에 전문인답게 주님의 방식대로 주어진 소임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목회자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라며 스스로도 늘 그렇게 되길 다짐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수재들이 모였던 경기중고등학교를 나온 청년 김중언은 중학교 재학 시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결단했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감리교신학대학으로 진학한다. 1969년 미국 드류신학대학원으로 유학, 목회의 길을 걷게 된 그의 족적은 이때까지만 해도 특별히 남달라 보이지 않는다. 예수님을 닮아가겠다는 꿈을 꾸었던 그의 이웃 사랑은 40년에 가까운 목회를 통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예수사랑이라는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요즘 참 어려운 시기이지요. 경제적으로 어려울 땐 지갑을 보지 말라고 권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지요. 수입이 적으면 돈을 세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새해 벽두부터 지구촌 사람들을 슬프게 만든 아이티 공화국 지진참사로 어려움에 처한 난민을 도와달라며 지난 2월 1일 후러싱제일교회가 연합감리교회 구호위원회(UMCOR)에 낸 6만 달러의 성금은 당시로서는 연합감리교회 소속교회를 통틀어 가장 많은 액수였다. 후러싱제일교회의 세상을 향한 구호손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난 때에도 5만 달러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쾌척 했다. 김중언 목사를 통해 오랜 기간 구제와 헌신에 대한 훈련 받은 성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단순히 돕는다는 의미를 넘어 예수사랑을 행동으로 나타낸 이들의 손길과 헌신으로 폐허가 된 땅에 건물이 세워지고 찢겨진 생채기가 아물고 있는 것이다.

10여 년째 매주 토요일이면 뉴욕 149가에서 100여 명의 히스패닉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커피와 도넛을 제공하는가 하면 매 주일마다 조선족들을 위한 영어교실을 운영하며 재기를 돕는 일도 교인들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또한 지난 2000년부터는 인근 9개 고등학교에 "Community Service Award"를 졸업생 중에 선발해 $1,000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까지 10만 달러에 이르는 장학금을 지원했다. 후러싱제일교회의 이런 세상을 향한 손길은 "내 교회" 만 외치는 일부 교회에 교훈이 되면서 땅끝까지 이어갈 기세다. 2001년부터 중국 연길에 연변 제1 중학교와 연길시 제2 고급중학교에서 각각 2명의 장학생을 선발해 첫해는 $500,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매년 $300씩 지원하여 이미 120여 명에게 이 장학금이 주어졌다.

교회로서는 유일하게 지난 2003년부터 플러싱 한인회가 주관하는 '음력설 퍼레이드'에 참여하면서 문화민족으로서의 미국 내 한인이민자들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도 적극적이다. 가정문제연구소, 한인회, YWCA 노인 경로잔치, 청소년 센터, 뉴욕주립대학 한국기독학생회, 교도소, 무지개집, 무료 진료 등 수많은 지역 사회에 보조와 협조를 아끼지 않는다.

50여 년 전 한 소년이 가슴에 심은 꿈은 이렇게 하나님을 통해 구체화 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수렁에서 일으키며 새로운 희망을 안기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목회도 삶이며 이런 삶을 통해 나타내 보이신 하나님의 도우심이 너무 생생해서 고빗길마다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요한 웨슬리의 근본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는 그는 "고통 후에 채워진 기쁨이 더 큰 것이어서 지난날의 고통은 자연 잊혀지게 되더라"고 그의 목회를 회고했다.

그는 목회와 이웃 사랑뿐만 아니라 미주한인사회, 나아가 지구촌을 향한 복음의 비전을 열어가는 일에도 황금 같은 시간을 쏟아 붓고 있다. 2007년 뉴욕기독교 TV(KCTV-타임워너 케이블 채널533, 대표 박용기 장로) 재단 이사장으로 부임한 이래 미디어를 통한 주님 영광 나타내는 일에도 열심이다. "큰 야망이나 욕심 없이 제게 맡겨진 책임, 그것만을 보고 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 인도하시는 대로 하룻길만 그렇게 365일 가면 일 년이 가더군요. 큰 스트레스를 별로 받지 않고 사는 천성 때문인 것 같아요."

그의 이런 믿음의 원칙을 지켜가는 외골수적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족적은 현지 한인사회는 물론 메인스트림에서도 높게 평가했다. 뉴욕 교회협의회(CCCNY 회장 캘빈 버츠)가 '2008 올해의 목회자상'(The Clergy Leader of the Year)에 김중언 목사를 선정하였다. 앞서 2008년 1월엔 뉴욕한인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한인"에, 그리고 감리교신학대학 창립 120주년 기념 '2007년, 자랑스런 해외 동문상'에 오르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는 교회의 '함께 사는 공동체 의식'을 높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크리스천의 공동과제인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는 일'은 이런 어려운 이웃의 손을 잡아주는 데서 비롯되는 공동체 참여 정신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는 그는 "제가 섬기는 교회가 땅에 떨어져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열매 맺기를 소망하고, 이웃들에게 쉼터가 되는 플래그십 교회(flagship church)가 되기를 소원 한다"고 했다.

* 김중언 목사는 1941년 4월 생으로, 감리교신학대학을 졸업(1964), 1966년 인천 소야리(섬)감리교회를 개척한 뒤 1969년 미국으로 유학, 드류신학대학원에서 M.Div.(1972), 드류대학교 대학원에서 기독교윤리 Ph.D. 과정을 이수했다. 1978년 연합감리교회 정회원 목사안수를 받고, 연합감리교회 뉴욕연회 뉴욕/코네티컷 지방감리사(1996년)를 거쳐 1998년부터 후러싱제일교회(NY)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1968년 결혼한 오애순 사모와의 사이에 유경, 유민(UMC목회자) 두 자녀와 손자 손녀 3명을 두고 있다.

만난사람: Mark Han, Lifereport 발행인(iGodboy@Gmail.com)
올린날: 2010년 4월 23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