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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경 위에 놓인 등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무엇으로도 되갚을 수 없는 큰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았습니다. 그 사랑은 미움과 분쟁과 부도덕이 지배하는 어둠의 삶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빛 가운데 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들을 향하여 베드로 전서 2:9은 말해줍니다.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기 엄청나게 많은 얼음을 저장하고 있는 창고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창고가 불에 탄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고 합니다. 그 얼음 창고에는 수천 갤런의 잠재적 진화제가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물은 모두 얼어 있었기 때문에 불을 끄는데 사용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이런 모습이 없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놀라고 감격스러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섬기고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쓰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물로 존재할 수 있으면 충분히 불을 끌 수 있는데, 꽁꽁 얼어붙어 있기 때문에 쓸모가 없는 얼음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빛이 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 빛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라고 하실 때 ‘너는’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너희는’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이라는 말은 지금 함께하고 있는 제자들을 가리키는 것인데 지금의 교회 공동체를 의미한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이것은 그 뒤에 오는 말씀을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 즉 ‘마을’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것처럼 세상 한가운데 세워진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16절)고 하십니다.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놓아두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강조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빛이 되어 어둠을 밝히는 일을 감당해야 하는데 그 일을 감당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빛이 되는 일에 관심이 없는지 모릅니다. 스스로를 태워 빛을 발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얼마나 기쁜 일인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 사랑에만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백 명의 사람이 크고 어두운 방에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그 방은 아주 아름다운 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들고 있던 등잔의 불이 모두 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 한 사람이 겨우 등잔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제야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차례로 백 개의 등불의 켜졌습니다. 마침내 멀리 있는 새로운 것들도 환히 비추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습니다 훌륭했습니다. 경이로웠습니다.

등잔이 백 개가 있다고 해도 꺼져 있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등잔 하나가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백 개의 등잔이 모두 불을 밝힌 것입니다. 드디어 모든 사물이 제대로 보이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세상 어둠을 비추는 한 줄기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셨습니다. 또한 누구든지 깨어나 자신이 간직한 등잔에 불을 밝히기 원하면 그에게 불을 붙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붙여주신 불꽃을 간직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작은 불꽃이지만 등경위에 높이 놓여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환한 빛으로 비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이 붙여진 등잔의 불꽃은 아주 작은 바람에도 흔들립니다. 잘 간수하지 않으면 쉽게 꺼지고 맙니다. 빛으로 존재해야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이처럼 연약합니다. 등불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마치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마음의 중심을 잃고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이 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권력일 수도 있습니다. 또 질병과 고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아주 심하게 흔드는 것은 이웃들과 갈등을 겪을 때입니다. 사랑하며 살아야 할 그들과 불화하게 되었을 때, 이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이 없습니다. 아주 가깝게 지내는 이들과 불화하게 되면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서운한 마음이 생깁니다. 미워하는 마음만 자꾸 쌓여갑니다.

원망과 미움, 이런 것이 우리 영혼을 질식시킵니다. 우리 얼굴을 어둡게 합니다. 천진하게 웃지 못하게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마음을 열고 만나지 못하게 합니다. 미움과 원망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아름다웠던 관계는 깨집니다. 거리감이 생깁니다. 어쩌다 만나도 어색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볼 뿐입니다. 다가서려고 하지만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운지 모릅니다. 불이 붙여진 등불이 등경위에 놓여있어야 하는데, 말 아래에 놓여있는 꼴입니다.

어떻게 해야 마음의 평화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아름다웠던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죄는 ‘소외시키는 힘’이라고 합니다. 죄는 멀어지게 하는 힘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로 상처를 주고받는 게 사람입니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만나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흔들리면서도 사랑하는 법을 알아가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닐까요? 이렇게 흔들리면서도 용서하는 법을 알아가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닐까요? 이렇게 흔들리면서도 평화를 만드는 법을 알아가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닐까요? 이렇게 사는 모습이 교회 공동체가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모습이 아닐까요?

오늘날 세상에 보이는 우리 교회의 모습은 밝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얼마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이룩한 목사님이 사회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재정 비리에 연루된 것입니다. 아직도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비리가 어느 정도인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서 그 갈등을 풀어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회법을 비려야 했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금도 많은 교회들이 갈등의 위기상황을 잘 풀어내지 못해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에, 교인과 교인들 사이에,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생기는 갈등 때문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것은 현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있습니다. 갈등을 건설적으로 풀어내면 더욱 건강한 관계를 맺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해 서로 갈라서고 고소하고 원수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L과 Y는 30년 이상 한 교회를 다니며 자주 골프를 하는데 하루는 그 교회에 새로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C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Y와 C가 골프 규칙 때문에 사소한 시비가 있게 되자 L은 골프 규칙은 아랑곳하지 않고 C의 편을 든 것입니다. Y의 입장에서는 골프 규칙도 그렇지만 L이 공정한 입장에 서 주지 않은 것이 못내 서운했습니다.

상한 마음으로 집에 간 Y는 아내에게 화를 내게 되었고 부부싸움으로 번지게 되었습니다. 평소 Y는 아내가 성경도 많이 읽고, 교회에서 봉사는 열심히 하면서도 평소 집에서는 식사도 잘 안 차려주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골프장에서 가지고 온 스트레스에 아내에 대한 불만이 더해지니까 Y는 그만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보기 싫은 아내가 앉아 있는 교회에는 안 나가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제 불똥이 교회로 튄 것입니다.

Y는 2개월 정도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목사와 교인들은 부부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지도록 전화도 하고 심방도 했습니다. 결국 Y는 교인들의 권유에 못 이겨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교회에 온 Y는 교인들과 서먹해 지게 되었습니다. Y는 자신을 환대하지 않는 교인들과 목사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Y의 서운한 마음은 점점 구체적이 되어갔습니다. 10년도 넘은 지난 일들을 기억해 내며 서운함을 토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불평의 대상이 된 교인들도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교인들 중에는 지난 일이지만 시비를 가려보자고 맞서기도 했습니다. 또 부부싸움에서 시작 된 일을 교회와 동네에 전가시켰다고 Y를 따돌리는 교인도 생겼습니다.

일이 점점 커지자 Y는 자신이 부부싸움을 핑계로 교회에 안 나오기는 했지만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일 뿐이고, 사실은 동네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한다는 설음이 폭발한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교회에 신분의 차이와 차별이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담임목사는 화해사역 훈련을 받은 분이었습니다. 그는 감정분리의 방법을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주일 예배 시간에 교인들에게 화해사역의 감정분리 방법을 소개하고 모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요즘 우리 교회에는 이미 알려진 문제로 인해서 큰 혼란과 갈등이 생겼습니다. 마치 실타래가 엉킨 것처럼 뒤엉켜 이제는 누구도 나서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화해를 이루는 방법 중에 감정분리의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께 부탁 드립니다.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서 말하지 말아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만져주시기를 기도하면서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본분을 지키는 방향으로 다시 돌아갑시다.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 하지 말고 그저 그리스도인의 본분을 다합시다.”

담임 목사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L과 Y와 C가 만나 직접 대화하기를 독려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Y는 밤늦게 L의 집에 찾아가 직접대화하기를 요청했고 Y와 L은 주일 예배 후 교회에 남아 대화를 하며 서로가 서운했던 일들을 털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둘은 오랜 대화 끝에 오해를 풀고 서로 화해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전처럼 친하게 잘 지내게 되었습니다.

담임 목사는 둘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지고 난 후에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사실 Y는 이 일이 있기 몇 년 전에 아내와 이혼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혼 서류를 준비하고 아내의 도장을 받으려는 순간 목사가 그 사실을 알게 되어 화해를 시킨 것입니다.

그때 목사는 화해를 이루는 대화법을 적용하였습니다. 고맙게도 Y 부부는 3주 동안 목사의 안내를 잘 따라주었고 결국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목사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기들이 30년 동안 헛살았다고 하면서 다시 결혼하겠다고 서약까지 했었습니다. 그랬던 Y가 L을 찾아가 직접대화를 요청했던 것입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기의 상황에서 화해를 경험했던 그였기에 자존심을 내려놓고 화해의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또 L로부터도 놀라운 간증을 들었습니다. “목사님, Y 내외가 저희 집에 밤늦게 찾아왔었습니다. 그날이 토요일이고 너무 늦었고 만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는 불편한 마음이었지만 매일 읽고 있던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말씀이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베드로 전서 3장 9절이었습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참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이 말씀이 제 마음을 두드렸는지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이 제게 힘을 주었습니다. Y와 내일 만나서 대화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L에게도 Y를 용납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는 알게 된 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만져주심이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흔들리면서도 함께 빛을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흔들리면서도 사랑하는 법, 용서하는 법, 화해하는 법을 알아가며 건강한 교회를 세워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고 구제하는 일은 분명 착한 행실입니다. 그러나 갈등 속에서 행해지는 희생과 봉사와 구제는 빛을 발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람에게 비추어야 할 빛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사람들에게 보일 착한 행실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들이 마음에 평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가 서로 용서하고 화해를 이루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시대에 많은 교회들이 비록 흔들리고 있지만 함께하는 모든 교우들이 갈등의 벽을 허물고 평화의 우물을 팔 수 있을 때 오히려 복음이 왕성하게 전파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바라기는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를 통해 그리고 우리의 가정과 우리 교회를 통해 온전하게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 적용질문

1. 빛으로 사는 사람이기에 숨겨질 수 없다는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2. 등불을 켜서 등경위에 놓아두었을 때 등불에게 생기는 흔들림의 현상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나와 교회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구체적인 경험을 나누어 보자.

3. (가능하면 촛불을 켜서 함께 관찰하며 이야기 해보자.) 우리가 흔들리면서도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함께 해야 하는가? 그것을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희생은 무엇인가?

글쓴이: 조항백 목사, 맨스휠드한인연합감리교회, 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