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Navigation

하나님의 사랑의 언어를 찾아서

 

얼마전 하루종일 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돼지불고기와 상추, 오징어튀김과 순대를 저녁상에 내놓았습니다. 남편의 첫마디가 “저녁상을 보니까 당신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알겠어!” 하며 싱글벙글했습니다. 늘 아이들 좋아하는 것 위주로 식단을 짜다가 남편이 “진짜” 좋아하던 것들을 만들어 주니까 갑자기 감격했던 것입니다. 늘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구체적인 사랑의 언어로 서로 통할 때 부부는 행복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이 어떻게 하면 가장 잘 통할 수 있을까? 그것은 목회를 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있는 고민입니다. 가나안교회에 와서 중고등부 학생들과 함께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자기들을 사랑한다고 느낄 때 하나님의 사랑을 더 잘 느끼게 되겠지요. 그래서 열심히 <이메일>로 의사소통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메일이 통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딱 한 명 외에는 관심이 없는듯 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전화>를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해보았습니다. 학생들이 나보다 더 바쁜지 전화통화도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핸드폰으로 <텍스트>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직통이었습니다. 텍스트를 보내면 약 1분 안에 답장이 옵니다. “와우! 바로 이것이구나!” 거기에 덤으로 부모님들이 저에게 “우리 아이가요, 목사님이 텍스트 보낸다고 신기해 하고 좋아해요!” 하며 기뻐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학생들에게 가장 잘 통하는 사랑의 언어를 찾게 된 것입니다.

성경을 펼치면 하나님이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 꽉 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잘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가족과 잠시 <직접대화>를 하셨지만 자손대대로 내려가면서 그 길이 막혔습니다. 노아의 홍수 후에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직접대화>를 시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과도 <직접대화>를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잘 듣다가도 못들은 척 했고, 스스로 귀를 막아버렸습니다. 그러자 모세와 같은 중재자를 통해 <중재대화>를 시도했지요. 그래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딴 길로 가자 <율법>을 통해 대화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율법으로 사랑의 언어를 삼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가지고 오셔서 사람들의 쉬운 언어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꽃들과 씨뿌리는 일과 겨자씨 등을 예로 들며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용서와 구원의 언어, 즉  <십자가>와 <부활>의 언어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셨습니다. 이 언어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힘있게 통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인간들에게 잘 통하는 <사랑의 언어>를 하나님께서 찾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랑의 언어를 찾는 것은 시행착오가 있습니다. 그것을 배우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사랑의 언어를 찾아가는 것이 바로 화해사역입니다. 시행착오는 늘 있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방법을 찾아갈 때에 언젠가는 “와우! 바로 이것이구나!”하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언어를 깨달은 우리야말로 사랑의 언어를 가장 잘 찾아내는 화해사역자가 되지 않을까요?          

홍혜성 목사 (Rev. Hyesung Hong Lee)

Hslee3@gmail.com

www.canaankumc.org

(831) 333-6857

281 Beach Rd.

Marina, CA 93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