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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신앙을 위한 소통과 관계의 지혜

 

요즘, 세상을 걱정해야 하는 교회가 세상의 걱정거리가 되었다는 냉소적인 종종 이야기가 들려 온다. 밖으로 드러난 교회의 갈등과 분란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인 것은 자명하다. 화해사역은 ‘성장’에 치중해 내실 있게 자라지 못한 우리 한인교회의 신앙적 균형을 위해 꼭 필요한 ‘성숙’을 목표로 한다. 부흥과 성장이 교회의 양적인 확장을 통한 복음의 증거에 관한 것이라면, ‘화해’는 질적인 성숙을 통해 우리 교회가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져 가는 성화(sanctification)의 과정에 관한 것이다. 

화해사역은 복음의 핵심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사역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하여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모든 성도가 화해의 직분을 맡아 다시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사역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성서적 진리에 근거한다 (고후 5:17-19).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가지고 신앙적으로 고민한 경험이 있는 성도는 화해사역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개인의 신앙성숙과 더불어 자신이 속해 있는 신앙공동체가 더욱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데, 왜 다른 교인들과 갈등이 생기는 것일까?
  • 배우자와의 소통이 점점 더 막힌다. 더 늦기 전에 바람직한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
  • 사람들을 화해시키려는데 잘 안 된다. 성경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 자녀와 보다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고 싶다.

화해사역을 실천하기 위한 첫 단계는 갈등에 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통하여 이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나아가서 우리 삶에 선한 열매를 맺는 기회로 활용하는 것을 배우는 일이다. 그러나 이는 관계의 기법을 배우는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영혼에 대한 성찰을 통한 신앙과 인격의 성숙과 더 깊은 관계가 있다. 이 글에서는 기초적인 갈등이해와 화해사역을 위한 다섯 가지 전략을 나누려고 한다.

1. 갈등에 대한 이해의 도모와 이에 대한 자유로운 대화..

갈등은 보통 “사람들간에 생각과 입장이 다름으로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위기상황”이라고 정의된다. 갈등이란 단어의 어원을 살펴 보면 동양에서는 칡나무 갈(葛)자와 등나무 등(藤)자를 합해 갈등이란 단어를 조합해 내었다. 이는 넝쿨과에 속하는 두 나무 중 전자는 시계반대 방향으로, 그리고 후자는 시계방향으로 감아 올라가는 성질을 관찰하여, 둘이 한 장소에서 자랄 경우 얽히고설키는 모양에서 서로 복잡하게 꼬여있는 인간관계를 이러한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서양에서는 영어의 conflict 라는 단어에서 보듯 그 어원이 되는 라틴어의 con (함께)과 fligere (치다)가 합하여 ‘함께 치다’ 혹은 ‘서로 때리다’는 의미를 가지는데, 동양의 갈등과 비슷한 부정적인 뜻을 가지면서 좀 더 역동적인 의미를 지닌다 하겠다. 보통 교회 안에서 목회자나 평신도 모두 갈등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 불문률이고, 이 주제에 대한 대화를 피하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건강하고 화해적인 신앙을 위해서는 이 주제에 대해 솔직하고 자유롭게 대화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동일한 주제에 대해 설교나 성경공부 등을 통해 솔직하게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2.  다양성의 존중: 다름과 틀림은 다르다

화목한 관계를 위해서는 ‘다름’과 ‘틀림’을 구분 할 줄 아는 능력과 이를 신앙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름은 ‘관찰진술’로 그저 ‘다르다’에 대한 기술인데 반해, 틀림은 ‘판단진술’로서 옳고 그르거나 선하고 악하다는 가치판단이 담겨있다. 획일적인 가치기준을 중요시 했던 전통적인 유교문화의 잔재가 남아 있는 한국문화에서는 규범이 제시하는 유일한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다르다’고 보기 보다는 ‘틀리다’고 보는 경향이 있고, 이는 다른 의견이나 태도를 용납하지 못하는 성향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조선시대 사문난적(斯文亂賊) 이란 이름으로 주자학이 아닌 다른 유학적 학풍조차 이단(사학)으로 정죄하고 처벌했던 역사가 그 한 예라 하겠다. 

다름이 긍정되는 곳에서는 다양성이 존중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원리 중의 하나이다. 창세기에 보면 천지간 모든 사물을 다양하고 다른 모양으로 창조하신 후 하나님께서 ‘심히 보기 좋았더라’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의견이 있을 때, 이를 대립관계로 간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고 존중할 줄 아는 것은 갈등극복과 화해사역의 첫 걸음인데, 이는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결코 쉽지 않는 성숙한 인격이 요구되는 덕목이라 하겠다. 예를 들어, 당회나 임원회에서 논란이 있는 사안에 대해 상이한 의견들이 제시될 때, 서로를 대립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고, 함께 당면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며 머리를 맞대야 하는 한 팀의 구성원으로 볼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진영논리를 극복하고 관점수용 혹은 역지사지의 사고방식을 지향하는 일이 중요하다. 

3. 소유로부터 관계를 지향하는 .

인생은 관계가 전부다’라는 말이 있다. 그 만큼,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인생의 목표로 추구하는 행복을 생각해 볼 때, 소유를 중심으로 한 성공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다.  좋은 관계를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행복하다 할 수 있고, 부정적인 관계를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관계는 메아리와 같은 것이다. 내가 어떻게 상대를 대하느냐에 따라 이에 상응하는 상호관계가 형성된다는 이치를 가르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속담이 이와 관련되는 지혜를 담고 있다. 예로부터 ‘무감어수 감어인 (無鑑於水 鑑於人)’이란 가르침이 있는데, 자신의 모습을 거울(물)에 비치지 말고, 사람 즉 타인에 비추어 경계로 삼으라는 말이다. 그 만큼 관계는 인생의 행복과 신앙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므로, 이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 (롬 12:17-18). 그런 면에서 개인이나 교회의 연중계획이나 목표를 세울 때, 소유적인 관점에서 수치적인 성과(헌금이나 교인의 숫자)의 달성을 제시하기보다 관계 (회개/용서/화해/회복)적인 향상을 지향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

4. 갈등을 선한 기회로 활용

신앙생활 가운데 갈등을 부정적으로 보고 피하는 경향을 극복하고 이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이해해서 이를 선한 기회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갈등은 어느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갈등은 그것을 어떻게 다루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에 파괴적일 수 있고 혹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이런 견지에서 갈등은 ‘가능성의 미학’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위기(危機)라는 단어에 위험과 기회라는 두 가지 요소가 다 내재해 있는 것처럼, 갈등은 부정적인 위험일 수 있지만 반대로 기회일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갈등은 물질과 같아서 갈등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주인이 되면 우리 삶은 피폐할 수 밖에 없으나, 우리가 갈등을 통제하고 적절히 잘 사용하면 우리 삶에 뜻밖의 유익함을 가져 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갈등은 ‘해소’하는 것만이 아니라 ‘관리’하고 더 나아가 이를 통해 우리 삶을 ‘변혁’할 수 있는 신앙적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갈등을 선용하면, 우리 삶에 개인의 영적성장과 관계의 성숙 그리고 공동체의 화합과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예를 들어, 마치 조약돌의 거친 표면이 서로 간의 마찰을 통해 부드러운 상태로 변해 가듯이, 친구나 부부관계에서도 갈등이라는 끊임없는 과정을 통해 그 관계가 나날이 성숙해 갈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유행가에도 ‘아픔만큼 성숙해지고’라는 표현이 있지 않은가?  교회도 마찬가지로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표현처럼, 목회자의 교체시기나 성전 건축시에 자주 발생하는 갈등을 단지 시련이나 ‘마귀’의 장난으로 보지 않고, 이 경험을 통해 더 성숙하고 건강한 회중으로 거듭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승화시킬 필요가 있다. 

5. 웨슬리의 갈등해소 원칙

18세기 영국의 종교지도자였던 요한 웨슬리는 갈등을 극복하는 금과옥조와 같은 교훈을 전했는데, 이 원리를 신앙인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적용실천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In Essentials, Unity 본질적인 일에는 일치를,

In Non-essentials, Freedom 부차적인 일에는 자유를,

In Everything, Charity! 모든 일에는 사랑으로!

언뜻 보기에 자명한 이 가르침의 방점은 마지막 구, 즉 ‘모든 일에는 사랑으로!’에 있다고 해석한다. 일치를 추구해야 하는 본질적인 사안이나, 자유를 허용하는 부차적인 사안을 포함한 모든 일에 있어 ‘사랑’으로 임해야 한다는 교훈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일치를 빙자하여 권위를 강요하지 않고, 자유가 허용된다고 상대방을 무시하며 허투루 대하지 말며, 모든 일을 이해와 사랑으로 처리해야 공동체 안에 평화와 화해가 가능하다는 가르침이다. 

화해사역을 본격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이 글에서 다룬 갈등에 대한 다섯 가지 기초적인 이해가 기본이라 하겠다. 나아가 심화단계에서는 자신의 인성분석, 대화법, 사과와 용서, 중재사역, 그리고 회복적 정의 등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실습을 다룬다. 아울러 이 시대는 어느 때보다도 개인과 교회공동체 차원의 화해만이 아니라 세상과 사회로 이 화해사역을 확장하는 노력을 필요로 하는 시기라는 절박함이 있다.  갈등의 극복과 선한 활용을 통한 화해사역을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 문제,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통일 등의 사회적 성화 (social holiness)와 관계되는 이슈에 적용하는 것은 이 시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사명이자 책임인 것이다.  그리스로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신앙인들이 ‘평화의 왕’ (Prince of Peace)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먼저 갈등과 분란을 극복하는 화해와 평화의 본보기가 되고, 나아가 그 메센져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로 세상을 더욱 화목케 하는 날을 소망해 본다.  Shalom, שָׁלוֹם, Salaam, Peace, 平和, Paz, 평화!

글쓴이: 장학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