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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에서 깨어나라

 

김정호 목사는 스무 한 살 때인 1981년 목사가 됐다. 올해로 갓 50줄에 들어섰으니 인생의 절반 이상을 목회자로 산 셈이다. "지난 28년 동안 살아낸(?) 목사로서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면" 하고 물었다. "심령과 삶이 거룩해야 한다는 명제 위에 좌충우돌하면서도 그런 신념이 함께 자란 것 같다"고 했다.

"누구든지 나 자신이 의로운 변혁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예수가 이 시대 소망이라는 사실에 확신을 갖는 크리스천. 이제, 빛과 소금이라는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허스키하면서도 테너 톤인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호소력 있게 들렸다. 집회를 끝내고 돌아와 평소 같으면 잠자리에 들었을 늦은 시각인데도 그의 어법은 기승전결이 명료하다. 가설과 명제, 그리고 확신에 찬 주의주장이 잘 서술된 책장을 술술 넘기는 듯하다.

김 목사는 지난해 말 "1,000 교회, 10,000 신앙공동체, 100,000 제자"운동을 제창했다. 그의 이런 선언으로 연합감리교단 뿐만 아니라 미주 한인교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그가 처음 이런 주장을 제창했을 때 일각에선 "미주한인연합감리교회 총회장으로서 대외적으로 선포하는 형식적인 선언"쯤으로 일축하는 이들도 있었던 것도 사실. 하지만 "교세가 약화되는 현실에 거룩한 꿈을 함께 가꾸는 동지가 되겠다"는 감동으로 부름에 합하는 형제들이 모여 힘을 보태고 있다. 꿈을 공책에 적고, 그 꿈을 구체화하면 꿈이 이뤄진다는 공식이 지금 UMC 전체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제안을 하게 됐는지요. 교계의 반대는 없었습니까?" "사실 이런 숫자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고 볼 수 있어요. 산업혁명 이후 귀족화된 교회, 외형과 제도에 묶여버린 교회를 향해 복음의 야성을 회복해야 한다며 제도화된 틀 속에서 뛰쳐나와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외쳤던 요한 웨슬리 목사님을 생각하면 지금의 주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 역시도 관료화되고 방대한 조직을 거느리는 거대한 몸통만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을 피해갈 수 없는 게 현실 아닙니까?"

김 목사는 "이런 변혁은 감리교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부패된 영국교회를 떠나온 청교도가 그랬고, 사회의 의로운 변혁을 주도해온 장로교가 그랬습니다. 성장과 안정기조로 들어서면 느슨해지고 틀 속에 갇혀서 앞도 뒤도 좌로도 우로도 갈 수 없는 형국을 맞게 되는데, 역사는 이런 틀을 깨고 나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 UMC 한인총회가 한인연합감리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위해 내건 "일천교회, 일만 신앙공동체, 십만 제자" 슬로건은 2020년까지 12년 동안 완성시킨다는 목표로 올해 의욕적인 출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목표는 1천 교회를 세우고, 1만 신앙공동체를 통해 10만 명의 제자를 양육한다는 내용이 모토다. 언뜻 보기엔 외형적 성장을 추구하는 목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

"미국에선 지난 20년간, 교인은 줄어든 반면 목회자는 2배나 증가했습니다. 제도화된 틀 속에서 꿈과 비전은 제한되었고, 영성보다 행정력이 우선되는 지도력이 영성을 가로막는 철밥통 노릇을 한 셈이죠. 이런 틀을 과감하게 깨고 나와야 합니다. 우리 교계가 외형적 성장에만 집착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는 이를 위해 믿음의 야성을 회복하라던 웨슬리의 외침을 신앙의 신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한인연합감리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예수제자 세우기"에 달렸다고 믿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성서에 근거한 거룩한 삶, 곧 예수 그리스도의 경건한 삶을 따라가는 것인데, 이는 은혜와 나눔 그리고 섬김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의 이런 주장은 세상의 법이나 논리로 성서나 교회를 제단하려는 주의나 주장을 펴는 이들에 대한 경고로도 들리지만 궁극적으로는 한인연합감리교회의 총체적인 연대성이 제자와 소그룹 그리고 건강한 개체교회들의 연대성을 통해 나타나기 위해 인위적이고 세상적인 겉치레는 벗어버려야 한다는 내용으로 귀결된다.

그는 그러나 그의 이런 슬로건이 소그룹 활동이 활발한 타 교단과 달리 연합감리교단 내에선 셀 교회(Cell Church) 경험이 별로 없는데다 롤 모델(Role Model)로 삼을 만한 대표교회도 찾기 힘든 형편이어서 구체적인 실현단계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고 결코 중도포기하거나 우회해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나이는 젊은 편에 속하지만 연합감리교회 내에서도 비교적 선배 목회자에 속한다. 20대에 연합감리교회에서 목회자 안수를 받고 오늘날까지 30년 가까운 한 길을 걸어 온 덕분이다. 그렇다고 그가 걸어온 목회자의 길이 마냥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은 미주 한인연합감리교회 중에서도 가장 큰 목회를 하고 있는 교회 중 한곳인 아틀란타한인교회 담임으로 있지만 여기에 오기까지 목회자로서 그가 겪어야 했던 시련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조부와 부친에 이어 삼대 째 목회자의 대를 잇고 있는 그는 시카고대학 내 대학목회와 한마음연합감리교회 개척 그리고 이어진 교단본부의 파송이 성도들의 반대로 좌절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차라리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이런 시간들을 통해 목회자로서 진정 해야 할 일을 찾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UMC 통일위원회 소속으로 있으면서 남북통일이라는 의로운 역사의 꿈을 추상적 관심에서 실재하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다. 그러면서 이런 통일운동 역시 신앙운동으로 승화돼야 한다는 교훈도 배웠다. 당시의 시련이 관념적 신앙관에 사로잡혀 있던 자신의 틀을 깨고 나오는 계기가 된 셈이다.

그는 정신적 고향인 시카고를 떠나면서 목회자로서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큰 전환기를 맞게 된다. 1997년 자의반 타의반 시카고에서 아틀란타로 자리 잡게 된 그는 "사회변혁도 그렇고 선교나 통일을 향한 신념 등등 이 모두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이뤄지는 것이어야 한다는 신앙적 의지를 배웠죠."

그는 지금 아틀란타한인교회 담임으로 있으면서 "거룩한 영향력을 확대해 가는 열린교회"를 지향하는 목회에 정열을 쏟고 있다. "예수님이 잃어버린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듯 교회도 숫자가 중요하지요. 그렇지만 교회 부흥은 반드시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는 설교에서 자신이나 교인들, 이웃들의 삶 속에 나타난 거룩한 변화들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노래하게 한다. 그는 "사람은 대개 누구나 시련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올곧은 영성을 키우게 마련"이라며 "목사에게 시련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예배가 살아야 하고, 그러면서 아름다운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그리고 성도들에겐 하나님의 자녀로 쓸모 있는 인생이 되어야겠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거룩한 영향력을 배양하게 되겠지요."

그는 특히 현장목회에 예민하다. "주변엔 이혼이나 가정파탄, 경제적 난관 등등으로 속으로 앓고 있는 이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비탄에 빠진 이웃을 절대 외면할 수 없는 것도 목회자의 사명이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목회자는 주방장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목회자가 있고 좋은 양식이 있으면 성도들이 잘 먹고 건강하지 않겠느냐는 이치다. 그는 10여 년 만에 부쩍 성장한 지금의 교회가 자칫 숫자에만 치우쳐 건강한 복음과 거룩한 영성을 발휘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을까 경계한다고 했다.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모두가 영향력이 발휘되는 것은 아니죠. 인기연예인이 왔다고 구름떼처럼 몰려든 인파와 태안반도에 기름때를 제거하겠다고 찾아든 인파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다음세대의 제자양육에 열정을 쏟고 있다. 크리스천은 크리스천으로서의 정체성이 있어야 하는데, 예수의 제자는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 어디엘 가도 예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거룩한 자존감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교회가 기업화되거나 지나치게 조직적으로 변모되는 현실을 거부한다고 말한다. "이 시대의 교회는 거룩함의 회복에 맞춰져야 하는데 교회기능의 일부가 되어야 할 사회복지 에이전시로서의 역할이 마치 교회의 성향을 규정해 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교회는 나눔을 실천하는 장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영성이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목회자로서 어느 때 가장 보람을 느끼시는지?" "작지만 많은 체험들을 나누는 설교를 하면서 기쁨을 얻습니다. 삶이 변화되고 아픔이 회복되는 모습들이야말로 목회자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보람이자 행복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런 기쁨도 하나님, 예수님이 빠지면 허무한 것이 되는 겁니다."

20대라는 너무 어린 나이에 목회를 시작한 것이 때로는 장애가 되지는 않았을까. 1.5세 목회자로서 1세대와 2세대를 두루 아우르는 힘이 됐을 법도 하다.

"젊은 나이의 청년들은 세상이 주는 유희나 쾌락, 말하자면 술이나 담배를 피우는 것이 소위 한국교회에서 불신앙의 행위로 지적받는데, 이는 유교적이거나 불교적인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는 유교는 경건하고 불교는 거룩하다는 등의 속보다 겉을 중히 여긴 잘못된 시각 때문에서 온 편견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단지 건강에 좋지 않으니까. 그리고 이런 술 취하고 방탕한 삶이 육체뿐 아니라 정신건강을 해치게 되니까. 무엇보다 영성을 자라게 하는데 장애가 되니까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사람이 겉으로 깨끗하면서도 속으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술담배하는 교인들을 손가락질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손가락질 하는 그 사람의 내면에 더 많은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는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 아람어를 썼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소위 시장바닥에서 쓰는 언어인 아람어를 쓰며 그 시대 사람들에게 다가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학벌이나 세상의 지식, 부귀나 명예가 아닌 오직 사랑만으로 경건과 거룩한 영향력을 펼쳐나가셨다는 것이다.

"율법이 올가미가 돼서는 안 됩니다. 출석 잘하고 기도 잘한다고 모두 다 예수 잘 믿는 것 아니예요. 한때는 저도 목회자는 하나님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믿은 때가 있었어요. 조국의 민주화 투쟁에 참여하거나 해방신학적 관점에 몰입되기도 했고3, 지금은 거룩한 자화상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김정호 목사는 고교시절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와 일리노이공대(IIT)에서 화공학을 전공하고 보스톤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M.Div.), 시카고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Th.M.) 학위를 받았다. 1981년 연합감리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할아버지와 부친(김일엽 목사)에 이어 3대 째 목회자가 됐다. 시카고지역 대학목회 목회실장(1983~1995)으로 사역했으며 시카고대학 한인교회와 한마음연합감리교회를 개척했다. 1997년 아틀란타한인교회 담임으로 부임했으며 지난해 미주한인연합감리교회 총회장에 선출됐다. "죽어라 쫓아다녀 마침내 결혼했다"는 아내 황 은숙 사모와의 사이에 노스웨스턴대를 졸업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권인수팀에서 일하다

현재 백악관 참모로 기용된 큰 딸 소연양과 조지아대학(University of Georgia) 졸업반의 작은 딸 소희양, 장남 진우(에모리대학)군과 차남 현우(조지아대학)군 등 2남2녀의 자녀를 둔 다복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하다.

만난사람/사진: Mark Han, 프리랜서 리포터 CA (Life Report 발행인)
올린날: 2009년 4월 28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