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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우리를 도우라”

 

2012년 12월의 어느 날 중미의 한 마을에서 만난 갓난아이를 통해서 주님은 저를 선교현장으로 부르셨습니다. 다이앤은 15일 된 갓난아이로, 먼지투성이 그리고 연기 그을음투성이의 집에서 누워 있었습니다. 집이라고 말을 하지만, 검은 색 비닐로 바람만 막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전기도 쓰지 못해서 어둑하고, 통풍도 되지 않아서 고약한 냄새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심한 탈수증으로 또 임신동안의 부족한 영양공급으로 다이앤은 심한 저체중의 가녀린 몸으로 힘겹게 숨을 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힘겹게 쉬는 숨과 같이, 그녀에게 주어진 생명 역시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갓난아이였습니다. 그곳에서 다이앤을 만났습니다.

중미에서는 다이앤과 같은 아이는 흔하게 만날 수 있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제게는 힘겹게 숨쉬고 있는 다이앤을 보면서 우리를 위해 오신 주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가장 연약한 자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을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를 미화시킵니다. 마구간도 더럽고 지저분한 마구간이 아닌 아주 깨끗한 마구간으로, 함께 했던 동물들도 배설물범벅이 된 동물들이 아니라, 이제 막 목욕을 마쳐서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동물들로 바꾸지요. 그래서 실제로 오신 모습과는 다른 목가적인, 로맨틱한 모습으로 각색해 버립니다. 그러나 가난한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험난한 여정, 거기다가 2000년 전의 팔레스타인의 한 마을을 생각하면, 아마도 제가 본 다이앤과 같이 지저분한 곳에서 생을 이어가기 위해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바싹 마른 갓난아이의 모습이 바로 주님이었을 것입니다. 힘겹게 숨을 쉬고 있는 다이앤을 보면서, 나를 구원하시려 이 땅에 오실 때, 힘겹게 숨을 쉬며 생명을 이어가신 우리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이앤에게서 우리 주님의 가장 연약한 모습을 보면서, 저를 선교의 현장으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꼭 바울 사도가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고 주님의 뜻을 보았던 것처럼, 지금껏 주님이 저를 선교사로 부르시고, 거의 30여 년을 준비시키시는 것에서 이제는 다이앤을 통해서 주님은 나를 선교지에서 부르시고 계셨습니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라는 주님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주님은 내게 연약한 아이의 모습으로, 굶주려 마른 아이의 모습으로 오셔서 당신을 섬기라고 부르고 계셨습니다.

선교지에서는 다이앤과 같은 아이들, 사람들을 통해서 가장 연약한 자로 오신 우리 주님을 많이 봅니다. 여섯 살인데도 태어날 때 난산으로 인해서 한쪽이 마비된 마누엘을 통해서 주님을 봅니다. 마누엘은 가난으로 흙바닥인 집에서 매일 누어서 지냅니다. 흙바닥에서 힘없이 누어계시는 주님을 봅니다. 가슴에 커다란 암 덩어리를 가졌지만, 가난으로 인해서 암인지도 모르는 까따리나에게서 예수님의 아픔을 봅니다. 급식을 받기 위해 줄 선 아이들의 절박한 얼굴 속에서 우리 배고프신 예수님의 절박한 얼굴을 봅니다. 오지에서 만나는 수많은 이들에게서 이런 주님의 아픔을 봅니다. 참으로 많은 이들을 통해서 주님은 당신의 아픔을 배고픔을 여과 없이 제게 보여주십니다.

선교지에 나와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지 않습니다. 주린 이의 모습으로 주님이 오시면 먹을 것을 드릴 뿐입니다. 아픈 이들의 모습으로 주님이 오시면 아픈 곳을 만져드릴 뿐입니다. 헐벗은 모습으로 주님이 오시면 옷을 드릴 뿐입니다. 다만, 제가 기도하면서 하는 것이라고는 저를 통해서 저들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만이 보여지면 그것으로 족할 뿐입니다. 우리의 함께 함을 통해서,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그들을 향한 주님의 소망이 무엇인지가 드러난다면, 그뿐일 것입니다. 그저 선한 이웃으로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통해서, 연약한 이들이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시면 그것으로 족할 뿐입니다. 그다음은 모두 주님이 하실 몫이지요.

주님이 이루시면 “그때는 눈먼 이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드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 저는 자는 사슴과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이라.”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환상이 이사야 선지자만의 환상이 아님을 믿습니다. 주님이 이루시면, 비록 현재는 아픔이 있고, 주림이 있고, 눈물이 있지만, 그 모든 눈물을 주님이 친히 닦아 주실 것이고, 아픈 것이나, 주림이 다시는 있지 않은 이곳이 되리라 믿습니다. 주님이 이루시면, 주리신 주님이, 헐벗으신 주님이 아픈 주님이 이제는 그들 모두와 함께 뛰며, 기뻐 춤을 추는 곳이 됨을 믿음으로 봅니다. 저 역시 함께 기뻐하며 춤추면 그것으로 만족할 뿐입니다.

글쓴이: 이누가 목사, Healing Guatemala
올린날: 2015년 10월 22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