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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상황에서도

 

과테말라 선교를 모든 교우들의 기도 힘으로 은혜롭게 잘 마쳤다. 이번에 우리는 세 마을에서 환자진료와 어린이 사역, 그리고 풍성한 점심을 대접했다. 여기에 하나 더해 각 가정을 돌며 특히 아픈 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었다. 사실 우리가 그곳에 뭔가를 해주러 간 것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그곳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러 간 것이었다. 자칫 “우리가 이만큼 VBS를 준비했으니... 의사와 간호사가 이렇게 가서 헌신할 것이니...”라는 생각으로 갔다면, 우리의 방문은 그야말로 “show off”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선교 첫날부터 하나님은 우리의 그런 마음을 통째로 변하게 하셨다. 첫날에 엄청난 뻔한 일이 생겼다. 라구아디아 공항에서 애틀랜타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갑자가 다미와 성훈이가 “어, 우리 비행기는 다른 건데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황당 그 자체였다. 알고 보니 구입 당시 비행기표 10개가 동시에 구매되지 않아 두 표씩 끊었는데, 그 표 중에서 두 사람 표만 다른 노선으로 구매된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두 청년이 탔어야 할 비행기가 이미 한 시간 전에 떠나버렸다. 야단났다. 일단 이 두 명을 그 항공사의 게이트로 보냈다. 얼마 후 연락이 오기를 우리가 떠난 한 시간 후에 비행편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애틀랜타에서 과테말라로 가는 비행기가 5시 출발인데, 이 두 청년의 비행기가 4시 40분에 애틀랜타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과테말라로 떠날 비행기의 게이트는 4시 45분 정도에 닫힌다는데, 이 두 청년이 도착해서 공항 전철을 타고 빨리 달려와도 5시가 넘을 것이 뻔했다. 일단 직원에게 사정 얘기를 하자, 게이트를 최종시간인 4시 50분까지 열어놓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기도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날 함께 묵상한 말씀이 머리에 확 떠올랐다. 빌립보서 4장 11-12절,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언제? 모든 것이 갖춰졌을 때만이 아니다. 배부르고 풍족할 때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처지에서도, 그 어떤 경우에서도” 우리는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황당한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역사하실 수 있을까?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그렇다”는 확신이 왔다. 나는 모든 대원들을 먼저 비행기 타게 하고, 성표와 함께 기도하며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회개가 되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니, 이제 그렇게만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야!”라는 생각이 내게 가득했던 것이다. 처음에 하나님만 믿고 준비하기 시작한 이 선교를 어느 순간부터 하나의 이벤트로 생각하기 시작했었던 나를 발견했다. 기다리는 내내 회개하며 감사하며 기다렸다.

48분, 49분, 50분이 되었다. 그런데 50분이 지나는 순간, 모자를 쓴 성훈이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사색이 되어 성훈이 뒤편으로 달려오는 다미도 보였다. 할렐루야! 눈물이 났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최악의 상태가 와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감사였겠지만, 하나님은 정말 희망이 끊어진다고 느꼈던 순간 다미와 성훈이를 아니 우리 모두를 살리셨다(^^). 두 청년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났던 이유는 함께 과테말라로 향할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이번 우리의 선교 여정을 처음부터 돌보시고 계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특별한 상황’, 즉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진 상황’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상황에서도’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역사하신다. 이제 과테말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사역 현장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환경은 정말 열악했다. 첫날부터 비가 왔고, 모이기로 한 아이들과 환자들은 보이지 않아 선교사님도 당황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선교지에서 빈번히 일어난다고 한다. 우리는 어린이 사역을 오후로 바꾸고, 오전에는 마을을 돌며 가정 방문을 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비를 맞으며 말이다. 그런데 비를 맞으며 마을을 돌며 기도하는 그 첫 시간부터 하나님은 역사하셨다. 이미 공항에서의 사건을 경험한 우리에게, 환자나 어린아이들이 제시간에 안 나타나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상황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의 본격적인 사역 이전에, 마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며 이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주셨다. 그 진심이 통했는지, 한국말로 기도하는 데도 그분들 대부분이 눈물을 흘리며 함께 기도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지. 성령님이 그 자리에 함께 계시지 않는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나님이 과테말라 외진 지역의 산지 족과도 함께 하심이 느껴지니, 우리의 마음도 뜨거워졌다.

의료 사역도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지 않았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조금씩 꾸준히 온 환자들은 100명 정도였는데, 선교사님은 “첫 사역부터 진을 빼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불평이 될만한 상황들이 모두 감사의 제목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

어린이 사역도 그랬다. 50명을 예상했는데, 오후 첫 시간에 모인 아이들은 일곱 명이었다. 하지만 이번 성경학교의 리더인 근혜의 담대함 아래,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그 아이들과 찬양과 율동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따라 하지 않아 근혜 혼자 춤추고 노래하고, 뒤에서는 교사들이 힘을 실어주었다. 적은 수의 아이들로 당황했을 텐데, 근혜가 이렇게 담대한 청년인 것을 처음 알았다. 이것 역시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능력 있게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것임을 고백한다. ‘한 명이든 백 명이든, 우리는 한 영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보겠다’는 마음, 사역 첫날부터 하나님이 이런 마음을 받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노랫소리 어디에 있었는지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첫날에 20여 명, 둘째 날에 30여 명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예상한 50명을 훨씬 뛰어넘는 70명이 참석했다. 70명이나 왔으니 ‘성공’했다는 말이 아니다. “풍족하든지 궁핍하든지” “어느 상황에서도”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했다는 사실이. 하나님에게도 우리에게도 큰 기쁨이고 열매였다.

이번 선교를 통해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시작한다. 과테말라 선교를 가기로 작정하고, 모금행사를 하고, 의료와 어린이 사역과 마을 잔치를 계획하여 준비하고 헌금하는 것은 우리가 시작한다. 하지만 ‘그분을 통해서’이다.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이다. “나에게 힘주시는 그분”을 통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

비행기를 놓치는 상황으로 ‘이번 여정은 끝났다. 재수가 없다. 될 대로 되라’는 반응을 보일 수 있었겠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첫 발걸음부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게 만드셨고, 사역지에서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있었지만, 그 상황까지도 감사하며 나갈 수 있게 만드셨으며, 그렇게 마음을 드린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심을 보여주셨다는 사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얻은 소중한 경험이다. 이제 우리 모두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부족하거나 풍족하거나, 건강하거나 아프거나, 형통하거나 힘듦에 상관없이, 내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잊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다짐해 본다.

글쓴이: 이진국 목사 (로체스터제일교회, NY)
올린날: 2016년 7월 25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